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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머리고지에 서다…철원 DMZ 평화의길 가보니
  • 장민주 기자
  • 등록 2019-06-04 11: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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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일, DMZ 평화의길 철원 구간 일반 국민에 개방
  • 도보구간 3.5.km 포함, 총 15km·3시간 소요…비무장지대 내부·GP 공개는 처음

[일간환경연합 장민주 기자]샛노란 씀바귀 꽃이 소금 흩뿌리듯 지천에 펼쳐져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신록의 나무들이 일렁인다.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자연은 세월의 옷을 입고 거대하고 울창한 초록물결이 되었다. 이따금 날아가는 산새들이 내는 소리를 제외하면 들리는 것도 없다. 고요하고, 차분하고, 평화롭기까지하다. 눈 앞의 철조망만 아니면 한적하고 평범한 농촌 마을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2019년 6월, 우리가 처음 마주하게 될 ‘철원 DMZ 평화의길’의 모습이다.

 

 


철조망만 아니라면 어느 농촌 마을이라고 해도 믿겠다. ‘철원 DMZ 평화의길’ 도보구간에서 만난 비무장지대의 풍경.


 

‘DMZ 평화의길’ 철원 구간이 지난 6월 1일 개방했다.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아 지난 4월 27일 개방한 고성 구간에 이은 두 번째 평화의 길이다.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백마고지와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 안쪽의 화살머리고지까지 둘러볼 수 있는 구간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성 구간은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추진철책선 통문 앞까지만 갔으나 철원 구간은 철책선의 통문(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공식적인 통로)을 열고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 내부가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씀바귀 꽃이 비무장지대 곳곳에 지천으로 폈다. 이중 철책 너머로는 역곡천이 보인다.

 

‘철원 DMZ 평화의길’ 출발 지점은 백마고지 전적지다.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백마고지.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기록이 말해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간 한국군 9사단과 중국군 제38군 3개 사단은 이 고지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다. 쏟아진 포탄만 28만발. 목숨을 잃거나 다친 국군이 3500여명, 중국군은 1만여명에 달했다. 뺏고 뺏기는 고지전에서 땅의 주인도 24차례나 바뀌었다.

 

백마고지 이름의 유래도 전투와 관련이 깊다. 극심한 포격으로 나무가 모두 쓰러지고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여 백마고지라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사실, 전적지가 있는 곳이 백마고지는 아니다. 백마고지는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해 있어 지금도 일반인의 접근은 엄격히 통제된다. 대신 남한에서 가장 북쪽, 백마고지가 잘 보이면서도 일반 국민의 출입이 가능한 곳에 전적지를 조성했다.

 

태극기와 자작나무가 이어진 백마고지 전적지 입구.

 

이곳에서 출입절차를 마친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자작나무가 이어진 언덕을 올라 백마고지 전투서 산화한 영령을 기리는 위령비 앞에서 묵념한 뒤 평화의길 시작점으로 이동한다. 야트막한 언덕의 백마고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를 지나면 ‘철원 DMZ 평화의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탐방에는 해설사 1명과 참가자들의 안전을 도와줄 셰르파 2명, 군인이 동행한다.

 

자물쇠로 굳게 닫혔던 철문이 열리고 출입증을 지닌 지역 농민들만이 농사를 짓기 위해 출퇴근하는 공간으로 들어선다. 비무장지대는 아니지만 이 역시 처음있는 일이다. 조금 더 북쪽, 남방한계선 가까이 올라간다. 첫 1.5km 구간인 백마고지 조망대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했다. 

 

조망대에 서자 손에 닿을 듯 말 듯 백마고지가 가까이 다가온다. 철책선 너머로는 역곡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북한 땅인 평강에서 발원한 역곡천은 철원군과 경기 연천군을 지나 다시 북한의 임진강으로 흘러간다.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만큼은 남과 북의 경계도 모른 채 이어진다. 이곳부터 다시 3.5.km 공작새능선 조망대까지는 도보구간이다.

 

탐방객들이 ‘철원 DMZ 평화의길’ 을 걷고 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림은 철조망을 손으로 만져보며 걷는 것이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도보구간은 철책선에서 5~20m 정도 떨어진 군사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길은 여느 평범한 시골길과 다르지 않다. 주변으로는 출입허가를 받은 농민들이 드나들며 농사를 짓는 논도 있다. 그와 동시에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는 초소 등 군사시설이 또한 곳곳에 있어 비무장지대의 공존하는 평화와 긴장을 느낄 수 있다.

 

공작새능선 조망대 데크에서는 철책 너머 역곡천과 공작새 능선, 백마고지 측면, 화살머리고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데크는 이번에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새로 만들어졌다. 도보구간이 끝나는 공작새능선 조망대 이후부터는 안전을 위해 전 구간을 차량으로 이동한다.

 

차를 타고 다시 1.3km 이동해 세 번째 통문에 다다랐다. 이번 통문이 열리면 비무장지대와 화살머리고지, 철원GP로 연결된다. 여기서 참가자들은 신분증과 휴대전화를 맡겨야 한다. 카메라도 갖고 들어갈 수 없다.

굳게 잠긴 통문이 열리고 드디어 차량이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섰다. 남북 분단 후 이 문이 일반 국민을 위해 열리기는 처음이다.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군인들이 화살머리고지로 들어서는 출입구인 통문을 개방하고 있다.

 

통문에서 철원GP까지는 1.4km. 제법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길을 달려 이번 평화의길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최종 목적지 철원GP(Guard Post, 경계초소)에 도착했다. 철원GP는 비상주 GP다. GP는 병력 상주 여부에 따라 상주 GP와 비상주 GP로 구분하는데 비상주 GP는 병력이 상주하지는 않지만 상황이 발생하면 지체없이 출동하는 곳이다.

 

철원GP 1층(벙커층)에는 철모·수통·총·방탄복 등이 전시돼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남북이 함께 유해발굴과 지뢰제거 작업을 하면서 찾아낸 유품들이다. 화살머리고지 역시 백마고지처럼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격전지이다.

 

한국전쟁 막바지, 정전협정과 군사분계선 확정을 앞두고 펼쳐진 전투는 이후 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유해 수습도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뒤늦게나마 이름없이 죽어간 꽃다운 청춘들의 유해가 수습되고 있다.

 

총알 자국이 선명한 당시의 철모. 철원GP 1층에 전시돼 있다.

 

32발의 총탄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벌집으로 변해버린 수통, 총알 자국이 선명한 철모를 눈 앞에 두고 마음 먹먹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당시의 처절한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유품들을 보며 가슴 한 켠이 짠해온다. 

 

GP 2층은 외부로 이어진다. 외부는 탁 트인 사방에 위로는 태극기와 유엔기가 펄럭이고 있다. 철원GP의 외부 공간은 눈으로만 담아야 한다.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 건너 북한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곳이라 촬영은 엄격히 통제된다. 여기까지 둘러보고 다시 출발지점인 백마고지 전적지로 돌아오면 ‘철원 DMZ 평화의길’ 일정이 모두 끝이 난다.

 

철원GP에는 국내 사진작가들이 재능기부로 GP를 지키는 우리 군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도보구간 3.5.km를 포함, 총 15km를 전부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남짓. 참가신청은 두루누비 사이트(www.durunubi.kr)에서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10세 이상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철원 구간은 주 5일(화·목요일 휴무), 하루 두 번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운영하며 각 회당 참가인원은 20명이다. 날씨에 따른 모자나 선글라스, 생수, 비옷, 우산 등은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언제 봄이었냐 싶게 어느새 여름의 문턱에 계절이 서 있다. 이렇듯 봄과 여름, 계절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철원 DMZ 평화의길’을 걷는 것은 그렇지 못했다. 그저 만들어진 길을 걷는 것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걷는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하기까지한 그 일이 가까운 미래에는 계절의 변화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은 이제 시작이다.

 

‘철원 DMZ 평화의길’ 노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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